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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칼럼

나는 신의 섭리를 따르고 있는가?

by 신치 2011. 8. 1.

만사는 우리 생각처럼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용감하게 참고 견뎌야 하오.(세네카)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 p503)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 때

난 왜 안 되지 왜 난 안 되지 되뇌었지 (처진 달팽이의 말하는대로)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왜 안 될까? 언제쯤이면 잘 될까? 보험영업을 할 때, 나름 열심히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고 영업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에는 실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다행히도 죽도록 일이 하기 싫진 않았다. ‘언젠간 잘 되겠지. 일찍 시작했으니까. 다른 선배들만큼 했을 때는 오히려 내가 그 선배들보다 더 잘 되어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배들은 내게 말했다. ‘니 나이에 이만큼 하고 있는 것도 대단한거야. 내가 니 나이 때 시작했으면 정말 좋았겠다.’ 조금은 위로가 되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를 논할 때, 하나님은 모든 사건에 대처하려고 키를 잡은 배의 선장과 같은 분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몸담았던 그 곳에는 이미 많은 배들이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배의 크기도 달랐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통통배가 이렇게 온갖 비바람과 어려움을 헤치고 가다 보면 더 큰 배로 바꿔 탈 수도 있고, 저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태울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나는 내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신이 지금보다 훨씬 크고 더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배로 갈아 탈 수 있는 그 곳으로 나를 인도 해 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꿈은 결국 처음 탔던 그 통통배로 끝이 나 버렸다. 더 이상 노를 저을 힘도 없이 배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신은 내게 두 번째, 이제 막 출항을 앞두고 있는 첫 번째보다 더 작은 통통배에 탑승하게 했다. 이번에는 방향이 많이 달랐다. 함께 탑승해 있던 사람도 달랐다. 어떤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닻을 달고, ‘이번에는 잘 되겠지. 잘 되게 만들어야지라고 굳은 결심을 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품고 출항을 했다. 첫 번째 배에서처럼 내가 닮아가고 싶은 커다란 배가 우리가 가는 길에 앞서 가고 있진 않았지만,  이 배에서라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빠른 시일 내에는 어렵더라도, 우리가 가는 길에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등대가 보일 것 같았다. 등대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등대를 대신 할 수 있는 빛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모두가 힘을 합쳐 열심히 노를 저어 달려 나갔다. 때로 팔이 아파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배에 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힘을 모아 다시 노를 저었고, 바다를 가로질러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 마음이 되어 가던 중에 배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현듯, ‘이 배에서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배가 잠시 정착할 수 있는 항구와 또 다른 배들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배에서도 별다른 성과 없이 내려야만 했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배이다. 신이 내게 준 세 번째 배. 두 번째 배보다 아주 조금 크다. 출항을 한지도 몇 년이 지났고, 비록 안개 속이긴 하지만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를 보며 가고 있다. 이 배가 가는 길에는 어떤 배도 앞서 가지 않는다. 하지만 뒤따라 오는 배들은 몇 대 있다. 우리 배의 선장은 그가 보고 있는 등대를 계속 이야기한다. 나도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그 등대를 보며 믿고 따라갈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배 앞에 펼쳐진 안개에 더해서 내 눈 앞에 나만의 안개가 더 짙게 깔리고, 걷히기를 반복하면서, 선장이 얘기하는 등대에 대한 믿음이 계속 흔들고 있다. 안개가 짙게 깔려 눈 앞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또 다른 배를 타야 하나? 다른 배를 타면 등대가 확실히 보일까? 이번에는 어떤 배를 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들로 머리 속이 복잡하다. 그리고 맑은 날이 되면 괜찮아. 잘 가고 있어. 등대가 내 눈 앞에 곧 나타날거야. 지금 비록 이 배 앞에 안개가 있지만, 곧 맑은 바람이 이 안개를 걷어버리고, 맑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줄거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타고 있는 배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 배 안에서 계속 뒷걸음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처진 달팽이의 말하는대로)

내가 어딘가에 미치고, 달려들어 본 적이 있던가?’ 매번 다른 배를 타서 나는 각각의 배에서 최선을 다해 노를 저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 늘 묻어 가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최선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얼마만큼 했어야 그래, 나는 그 때 최선을 다했었지!’ 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지금도 워낙 내가 써야 할 에너지들을 여기 저기 분산하고 있어서, 어느 것 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 곳에 집중해도 모자랄 힘인데, 그것을 조금씩 나눠 쓰고 있으니, 오히려 옆으로 새어 나가버리는 힘이 더 많은 것 같다. 요즘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맞는 건가?’ 등의 이런 고민들에 내 힘을 많이 쏟아버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배에서조차 내가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대로 쏟아 보지도 못하고, 내려버릴까봐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런데 나는 왜 미친 듯 달려본 적이 없을까? 매번 새로운 배에 오를 때마다, 내가 그 배 안에서미치지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또 다른 배를 생각한다. 다른 배라는 것은 지금 내가 속해 있는 배와 방향은 같지만 크기가 다른 배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배일 수도 있다. 상상 속의 배를 그리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그림을 신나게 상상하며 그리다가 멈춰 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바로 흔들리는 순간이다. ‘내가 탄 이 배가, 내가 타야 하는 배가 과연 맞는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히 지금까지는 이런 고민이 들었던 매 순간마다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새로운 배를 타는 순간 또 다른 상상의 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이 배 안의 현실을 조금 더 직시하고, ‘지금 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떤 것일지, 지금 내가 미쳐야 하는 것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이젠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힘들었던 나의 시절 나의 20대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처진 달팽이의 말하는대로)

지금껏 힘들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매 순간, 각기 다른 이유들로 힘들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었던일들도 있고, ‘지금이라면 이렇게 했을텐데라고 조금은 후회가 남는 일들도 있고, ‘덕분에더 좋은 일이 생긴 일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의 어려움들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물론 결국에는 내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선택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음이라는 놈이 정처없이 흐르기만한다는 것이다. 때론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도 있어야 하는데, 계속 흘러만 간다.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나의 마지막 20. 이제는 내 마음 속 깊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을 붙잡아 지금에 충실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조수미, '나 가거든' )

요즘 고민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도대체 나는 뭐가 되려고 지금의 이 자리에 이른 것일까?’였다. 끝이 없는 고민이다. 왜냐하면, 신이 내게 주신 섭리라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우연을 가장하여 필연적으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의 연관성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내 삶이 끝나고, 내 영혼이 영원의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짧은 나의 생을 돌아보며, ‘신이 내게 내려주신 섭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그저 나는 신의 섭리를 잘 따르고 있다고 믿으며, 그과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슬픔,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잘 받아들이고,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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