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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칼럼

Follow my bliss? 나만의 희열을 따르고 있는가?

by 신치 2011. 6. 8.

 

<
신화와 인생>을 읽으며 내 마음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내용은 황무지를 떠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삶. 내가 기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짧은 내 삶을 되돌아 보니 나는 엄마나 나의 가족들이 혹은 내 주변의 지인들이 내게 기대하는 삶 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

 

첫 번째 나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었다. 장녀인 내게 엄마는 쏟아 부을 수 있는 모든 에너지와 경제력을 동원해 나를 엘리트로 키우고자 노력 했다. 물론 엄마의 바람이나 기대만큼의 엘리트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수학은 늘 선행학습을 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던 과목은 항상 '수학'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이기도 했고, 그 선생님을 보며 '나도 저런 수학 선생님이 되어야지'라는 꿈을 가졌었다. 고등학교에 진학 할 때까지도 나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집안 사정상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공부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수학이란 것은 나에게 첫 번째 장애물이었다. 좋아하지만,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결국 수학 능력 시험을 앞둔 고3때 지나온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수학선생님'이란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수학이 나를 잡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꿈꿔온 일이긴 했지만 포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더 이상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편안하면서도 약간은 초조한 마음이 있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해야 기쁠까? 라는 고민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새벽 등교와 야간 자율 학습 덕분에 인터넷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던 중, 나는 어느 주말, 갑자기 이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백통의 스팸메일을 정리하다가 스튜어디스 양성학원의 광고메일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파일럿'이었다. '그래!! 나는 하늘을 날고 싶어. 파일럿이 되어야겠다!!' 고등학교 3학년의 절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파일럿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 보기 시작했다. 공군 사관학교에 진학하는 방법이 있어서, 공군사관학교 설명회에 참석해서 얘기를 들었지만, 지원할 수 있는 정도의 성적이 되지 않아 포기했다. 두 번째 방법은 '항공대학교의 항공운항과'에 지원하는 방법이다. 수능을 치고 원서를 넣을 수 있었지만. 입학원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항공대학교 항공운항과에 입학을 해도 실제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으려면 유학을 가야하고, 실제로 파일럿이 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희박한 성공률에 도전하기에는 내게 '파일럿'이라는 꿈이 절실하지 않았거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유학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가정환경이 아니라는 것도 선택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차선으로 진로를 '수학통계학부'로 결정했다. 졸업한 후에 돈을 벌어서 항공유학을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안되면 '수학선생님이라도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것이다. 내가 기뻐할 일이 아닌 현실과 타협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이 때의 선택은 이후에 많은 후회로 남는다. 대학 이후에 만나서 내 꿈이 파일럿이라고 얘기하면 10명 중 여덟 명은 내게 물어본다. “그런데, 왜 항공대나 공사 지원 안했어?”라고.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할말이 없다. “안 될 수도 있어서..”라는 대답은 정말 궁색한 변명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것일까?

 

대학입학을 한 후 1년 동안 열심히 놀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드럼도 잠깐 배웠고-아주 잠깐이었다-, 학과 외의 여러 가지 활동들-동아리, 연구원, 근로장학생 등-을 하면서 좁은 교정을 지나칠 때 인사하는 사람이 꽤 많을 정도로 교내에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대학교 가면 하고 싶은 리스트 중 하나가 ‘인맥 많이 쌓기’였다-. 1학년 겨울 방학이 다가오기 전 엄마는 내게 미국으로 Work & Travel 이란 프로그램으로 해외에 한번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Working Holiday에 관련된 신문기사를 오려두고 대학생이 되면 꼭 한번 가봐야지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당장 결심을 했다. 그리고 1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고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것을 해보고 내가 번 돈으로 쉬는 날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우여곡절 많은 2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 여행지로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를 선택했다. 동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부의 한 공항에 도착. 아는 분의 소개로 미국에서 택시 기사를 하는 분이 우리를 데리러 와 주셨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들은 투 잡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에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택시기사는 세컨드 잡이라는 말에 원래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 그 분이 하는 일은 서부쪽에 있는 항공학교에서 비행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파일럿'이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머리속에서 무언가 굉장히 밝은 빛이 번쩍거렸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이 되살아났다. '파일럿!!!!' 그리고 머나먼 미국 땅에서 이분을 만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사나 항공대를 졸업하지 않고도 파일럿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 해 주셨다. 유창한 영어는 필수이고, 시력이 좋아야 하며, 돈이 꽤 많이 든다는 것, 대한항공보다는 아시아나 항공에 유학파 파일럿을 많이 뽑는다는 등이 그 분이 알려주신 정보였다. 시력은 좋았고, 영어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고,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어떻게 돈을 벌어서 유학을 갈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아르바이트로 비행기값만 모아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를 타겠다고 미국에 계신 아저씨에게 말씀 드렸더니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최소 5,000만원은 가지고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결국엔 시간만 버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거야!!!" 그때부터 나의 목표가 정해졌다. "5,000만원을 모아야겠다!!" 학교에서 오래 머무는 것은 나에게 시간 낭비였다. 그래서 졸업학점을 무조건 맞춰야 했고, 남들처럼 휴학할 여유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졸업하고,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졸업과 빠른 취업'을 목표로 대학생활을 했다. 그리고 2006 2. 2002 3월에 입학하고 딱 4년 만에 졸업장을 손에 쥘 수가 있었다. 취업을 위해 입사원서를 50군데 정도 냈다. 그 중 면접까지 갈 수 있었던 곳은 딱 한 군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기업이었다. 최종 면접에서 그 회사랑은 인연이 아니었는지 탈락했다. 면접을 기다리던 중 내가 입사했던 곳은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재무상담을 하는 '지브롤터 마케팅'이란 회사였다. 대기업 면접을 본 것은 이 회사에 입사한 두 번째 날이었다. '면접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기존의 회사에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었다. 다행히(?) 떨어져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브롤터 마케팅을 계속 다닐 수가 있었다. 입사 후, 한달 간 내부 교육을 받으며, '이 직업 굉장히 매력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살고 있는 내 주변의 지인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돈을 관리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일이라니 너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일한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꽤 큰 장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여자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주자'라는 목표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파일럿'이란 꿈은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시작하면서 자기 소개를 할 때도 나는 늘 내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 꿈은 파일럿'이라고. 언젠가 파일럿이 되면 꼭 비행기를 태워드리겠노라고.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꼭 당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업으로서의 파일럿'이 아닌 '취미생활로 경비행기를 타고 싶다'로 꿈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LP라는 직업이 내게 주는 가치가 더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LP를 하겠노라'고 나의 인생의 항로를 수정했다.

2006
5월 입사한 회사가 2006 10월 문을 닫으며 p사 로 합병이 되자 나는 회사에서 '최연소' LP가 되었다. 취직한 친구들은 거의 없었지만-졸업한 친구도 거의 없었으니;;- 다행히 학교 생활을 다방면으로 한 덕분에 이미 취업해서 자리를 잡았던 선배님들을 많이 찾아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지인 중 일부와 그 분들이 소개해준 사람들의 일부가 나의 고객이 되었다. 2년이란 직장생활을 하고 일을 시작한 다른 선배들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꽤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LP 4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2010년에 5년차 LP가 되었다. 2006년부터 미미한 수준이긴 했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던 나에게 2010 1년간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매일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고, 이런 감정은 실적이 중요한 영업조직에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잘 버티고 있던 경제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심적인 부담감이 커져만 갔다. 거의 1년 내내 나는 암흑의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그만두고, 내 고객들을 두고 p사에서 나가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우연히 읽게 된 심리학책. <신화와 인생>에서 말한 것처럼 심리학이란 지금 현재 내가 왜 이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가를 해석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덕분에 조금은 내가 지금 왜 힘들어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심리상담. 일주일에 한번 심리상담을 받으며 내가 '인간 관계'에서 힘들어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만나기 싫어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내가 멀리 흐릿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트위터의 어느 모임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한 분-지금 회사의 사장님-이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창 소셜커머스가 붐이던 때였다. 사업을 시작하려던 분은 소셜커머스의 대안인 광고모델을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2010 말부터 파트타임으로 그분의 사업을 도와드리게 된다.

2010
12, 나는 p사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인원감축과 함께 임원진의 대거 퇴출이 진행 되었다. 그 때 내게는 최저실적 요건을 맞추지 못해 퇴사의 위기가 왔다. 그 전까지 나와 같은 상황 때문에 회사에서 퇴출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시기상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12월 말에 평생을 몸담고자 했던 곳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회사에서 잘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몸담고 있는 벤처기업인 'I'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p사에서 ‘잘린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왔’다면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굉장히 괴로웠을 것이다. 고객들이랑 꾸준히 연락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중도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감 있게 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잘린 덕분에 고객들과 나 자신에게 더 당당할 수 있었다. ‘회사’라는 공간이 평생 내가 몸담을 곳이라기 보다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아주 소중한 계기이기도 했다.

나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지금 여기’라면 계속 머물러도 되겠지만, ‘더 이상의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또 다른 희열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만의 희열’을 찾아 지금에 이른 것처럼, 앞으로도 ‘나만의 희열’을 찾아 살아 갈 것이다. 그 과정에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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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에 작성한 글이라.. 그 사이에 내게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희열을 따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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