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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칼럼

그림그리기에 대한 욕망

by 신치 2011. 6. 21.

괴테는 왜 화가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들이 존중하고 숭배하고 있는 것을 가능한 한 자기 것으로 할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만들어내고 표현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공상이며, 그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많은 고통이 생긴다 해도 우리들은 그것을 단념할 수가 없는 것이다. p180

 

아마 이러한 이유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시를 쓰고 싶었고, 희극을 쓰고 싶지 않았을까? <시와 진실>에서 보여지는 괴테는 연인과 정열적인 사랑을 하는 중에 그리고 뼈아픈 실연의 아픔을 겪은 후 등 다양한 사건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감정들을 겪을 때 창작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그의 감정들을 쏟아 부을 곳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얼마 전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보고, 듣고, 상상하는 것들을 종이와 연필만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드는 생각은 나는 왜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은 것일까?’였다. 도대체 왜???

그림이라는 매체는 표현의 도구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들을 열거해 보자면, 크게 말, 표정, 글이 있다.

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말이다. 말은 전달하기가 편하다. 생각나는대로 얘기하면 된다. 즉흥적으로 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다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말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윤활유의 역할을 해 주기도 하고,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과 같이 말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이 있다. 특히 감정이 격해져 있는 순간에 거르지 않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로 인해 말을 듣는 사람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나 서로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다가 괜히 상처주지 않았을까?’ 혹은 그렇게 얘기했으면 안 되는 거였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등의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직설적인 말이나, 좋게 얘기하면 될 것을 괜히 쓸데없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한번 비틀어 얘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상대가 누구인지, 상대가 어떤 기분인지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말도, 해야 하는 말도 달라진다. 요즘에 이상하게 말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대화가 힘들어진 것이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고려해야 하는 피곤함도 있고, 내 감정에 상관없이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것이 싫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따지고 한번 더 생각하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 조금은 불편한 관계의 사람을 만나기보다 감정이나 지위 따위 고려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만 찾으려고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돌고 돌다 보면 어느새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이야기할 것도, 말하고 싶은 욕망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느껴야만 하는 긴장감이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말을 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표정일 것이다. ‘밝은 표정을 위한 얼굴 근육 운동이라는 것이 인터넷 블로그에 올라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밝은 표정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피곤하면 피곤한 표정이, 우울하면 우울한 표정이 나타나고, 기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처럼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표정인 것 같다. 표정에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표정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 내가 상대에게 맞추어 주듯이 누군가가 내 표정을 읽고, 내가 슬프고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사람도 생길 수도 있고, 기쁠 때면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감정의 공유를 통해 내 기쁜 감정이 두 배가 되기도, 슬픈 감정이 절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내 감정을 숨기고 싶은데, 표정을 숨길 수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다. 흔히 얘기하는 포커 페이스가 되기 힘든 사람이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을 때 드러나는 표정은 더더욱 숨기기가 힘들다. 힘들고, 지치고, 우울할 때가 되면 여과 없이 표정에 그 감정들이 드러나곤 한다. 혼자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특히 즐거워야 하는 곳인데 나의 이런 표정 하나로 분위기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차라리 그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나는 내가 품고 있는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성향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표정 하나하나에 더 민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선택했던 것이 바로 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한번, 두 번 생각을 하면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감정들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좀 더 풍부해지기도 한다. 나를 온전하게 다 드러낼 수도 있지만, 철저하게 감출 수 있다는 것도 의 또 다른 매력이다.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만 골라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글이란 표현방식의 힘이다.

언제부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을 공유할 대상이 생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글들에 를 담아 내기 시작했다. 나의 일상을 정리하고, 그것을 공유했다. 점차, 공유할 나의 일상들이 드러낼 수 있는 것과,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뉘었다.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고르고 보니,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의 글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읽고도 기분이 좋아지는혹은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경험해서 공감할 수 있는것들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점차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것에도 적절한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글로써도 나를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은 아마도 지금 내가 표현하고 있는 방식들의 답답함에서 오는 욕망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해 온 방식들은 대부분 표현의 대상이 존재하는 것들이다. 대상이 존재하고, 그 대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혹은 육체적인 피곤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오롯이 혼자서 쏟아 부을 수 있는 매체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림일 수 있을 것 같다. 종이 한 장에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내면의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일까?

최근에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날씨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기분이 왔다갔다한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이유 없이 기분이 울적해지거나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가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너 도대체 요즘 왜 그러니? 뭐가 문제니?’ 따위의 질문들을 말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모르겠어, 나도 내가 왜 이런건지…’ 말이나 글과 같은 어떤 단어들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중충하고, 뿌연 회색빛 하늘 같은 감정일 수도 있고, 너무 환한 빛 때문에 눈이 부신 그런 감정들도 있고, 밤하늘을 보다 갑자기 떨어지는 유성 같은 감정들도 있다. 내 감정이나 내면의 소리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나에게 굉장히 익숙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익숙하기는커녕 전혀 표현해본 적이 없는 그림으로 표현하기란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만의 또 다른 언어로 표현 해 보고 싶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는 또 다른 답답함에 고통 받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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