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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칼럼

진짜 페르소나를 찾아서.

by 신치 2011. 6. 26.

나의 진짜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페르소나, persona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단어는 원래 연극 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철학용어로는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어쩌면 진짜페르소나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과연 진짜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가졌던 모습들을 그를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바라보려 한다.

 

어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이순신의 모습이다.

우리 순신이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 한번도 걱정을 끼치지 않고 혼자서 무엇이든 알아서 잘 하는 그런 착한 아이였어. 점점 성장해 가면서도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면, 부모의 의견을 구하곤 했었지. 그것이 부모로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으레 자식들이란 나이들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본인들 의지대로 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특히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많이 따랐어.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곧 잘 하곤 했어. 물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문관으로써 성공했었는데, 그 길보다는 자신에게 더 잘 맞다고 생각한 무관의 길을 선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르는게 어떻겠냐고 얘기도 해 보았지만, 본인의 의지가 워낙 굳건해서 그 아이의 의견을 따랐어. 지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아이가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늘 가슴 졸이고 걱정이 되긴 하지만, 전장에서 적들을 물리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아이의 선택이 정말 잘 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가 탁월하게 잘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 같아. 항상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본인은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하고, 내 안부를 물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항상 멀리 있고, 나랏일 생각하기에도 정신없이 바쁠텐데 말이야. 바쁜 와중에 내 건강을 항상 챙기는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이순신의 아들 화가 기억하고 있는 이순신의 모습은 어떨까?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나의 우상이었어. 내게 항상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하게, 강한 사람들에게는 강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늘 실천에 옮기는 분이셨지. 종들에게까지 항상 자상하셨던 아버지셨어. 아무리 아버지보다 벼슬이 높다고 한들, 고개를 함부로 숙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셨고, 아버지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들에게는 더 낮게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셨던 분이셨지. 한시도 나랏일에 대한 근심걱정을 놓지 않으셨을 정도로 본인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지만, 가족들에게 소홀히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나와 내 형제자매들에게 늘 닮고 싶고, 존경하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에게도 무뚝뚝해서 자신의 애정 표현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분이셨어. 바쁜 전쟁 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 오셨고,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틈만 생기면 함께 활쏘기를 하고, 말타기를 하셨던 아버지였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 같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여러 번 했었어. 아버지는 내가 보아 온 남자들 중에 가장 완벽에 가까운 분이셨거든. 하지만, 늘 아버지를 걱정하고 좋아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 힘이 되어드리는 와중에도 아버지가 많이 외로워하시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우리에게 늘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처럼,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성장한 내가 그런 아버지에게 외롭고 힘들 때에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그런 마음이랄까? 언젠가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버지에게 꼭 말씀 드리고 싶어. ‘아버지, 이제 저 이만큼 자랐으니,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잠시 놓아 두셔도 되요. 외롭고 힘드실 때, 제 어깨 한쪽 빌려드릴 테니 언제든 맘 편히 기대세요.’라고 말이야.”

이순신이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웠던 그의 친구 유성룡은 이순신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네. 동작나루에서 용산나루로 가는 배안에서 있었던 그 순간을 말이야. 악명 높은 야호의 못된 짓에 대해 그곳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들의 속이 아주 시원해 질 정도로 처벌했던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 나는 그 순간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어. 이 사람이라면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그는 알면 알수록 더 진국인 사람이었어. 무관이 되고나서 나랏일을 하면서, 나라와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아마 어떤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을 거야. 내가 본 사람 중 최고였지. 물론, 당시에 승진을 위해 필요했던 진급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부를 할 줄도 모르고, 그저 본인이 맡은 역할과 나랏일 안팍의 걱정만을 하는 원칙주의자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10년간 그 누구도 이순신을 알아봐 주는 이가 없어서 참으로 안타까웠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낼 사람이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내가 오히려 그를 위해, 그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적절한 곳으로 이끌기 위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어. 영의정이란 직위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거든. 10년간 그를 알아봐주지 못했던 이들이 내가 가진 힘을 통해 그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어. 이제서야 지난 10년의 시간동안 그가 평소에 갈고 닦으며 수양했던 그의 진가가 발휘 될 수 있을 것이지. 나는 그가 가진 능력의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그리고 전쟁 중에 늘 그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고, 그와 함께 임진왜란에서 적을 물리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군의 말을 들어보자.

장군님은 우리에게 늘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신 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그에게 주어진 공무를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아무리 바빠도 잠깐 시간을 내서 활쏘기를 매일 게을리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전쟁 중에 지치고 외로운 군사들이 즐겁게 훈련받을 수 있게, 활쏘기를 놀이처럼 만들기도 했고,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으면 자기가 가진 몫이라도 언제나 기꺼이 내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본인이 지킨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그에 대해서는 군법으로 확실히 처벌하는 무서운 분이기도 했습니다. 술을 참 좋아하셨어요. 하지만, 술을 그렇게 드시면서도, 단 한번도 술 마시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 분은 힘든 병사들을 적절한 타이밍에 다독여 줄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무를 보고, 활 쏘는 시간, 전쟁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늘 병사들과 대화를 하셨습니다.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병사들 각각의 개인상황, 힘든 일은 없는지, 가족들에게 안부는 전하고 있는지, 소소한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친형님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장군님을 많이 따랐습니다. 힘들 때면 늘 술과 안주를 챙겨서 찾아뵈었죠. 본인이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늘 내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이 있었기에 그 힘든 전쟁이란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분이었거든요.”

 

아들로써,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친구로써, 장군으로써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지만, 한결 같은 부분도 있다. 모두가 입에 침이 마를 새도 없이 칭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모든 이들에게 한치 혀로 보여주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에서 그는 잘 들어 주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던 것 같다. 과연 이순신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그만 알 수 있는 그만의 느낌이나 감정들은 어떠했을까? 이제는 그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머니 건강 걱정, 아내의 건강걱정, 아이들에 대한 걱정, 나랏일에 대한 걱정에 한시도 마음이 편안할 틈이 없다. 전쟁 중에 병사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순간에 지쳐 버릴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칠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한시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이 몹쓸 전염병 때문에 흐르는 식은 땀과 힘들어하는 내 몸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거의 매일 나를 찾아오는 이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새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있다. 그래서 달 밝은 밤 수루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어느 새 습관이 되어 버렸나 보다. 때로는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하는 지금 나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이들처럼 술에 취해 달빛에 취해 정신을 완전히 잃어보고도 싶고, 온갖 걱정과 근심거리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몸도 마음도 머리속도 깨끗하게 비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지금과 같은 고민들이 끝나는 순간은 아마 내 생이 끝날 때 일 것 같다. 지금은 어느 것 하나 놓아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없다. 가족도, 친구도, 나라도. 그저 지금의 내 역할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는.”

 

그렇다. 이순신은 그가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참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와 연결된 모든 이들이 그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고, 그에게 기대고 있다. 그런 것들을 견디기 위해서 그는 흔들리지 않고 누가 봐도 든든하게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버팀목이 되어주던 그가 기댈 곳이 없었다. 오롯이 혼자 잘 서 있어야 했던 것이다. 어쩌면, 아들 회의 말처럼 힘들고 외로워하는 그를 보면서 한번쯤은 내게 기대어 쉬어가도 좋을텐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 인()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이란 존재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고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고 실천력 강한 이순신이 조금 더 일찍 누군가에게 실천할 수 있었더라면, 난중일기에서 보여지는 그의 외로움이 조금은 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이순신의 페르소나를 통해 나의 페르소나를 생각 해 보았다. 나는 나의 가족들, 친구들, 회사동료 등 나를 알고 있는 다양한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기억되고 있을까?

요즘 나의 가족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나마 있던 신뢰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서 제 갈길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심지어 돈도 잘 못 벌고 있는애물단지같은 개념이랄까? 그래서 요즘 어머니는 곧 미국으로 유학으로 떠날 동생이랑 같이 미국에 가서 사는 것을 권하신다. 어머니 말씀의 요지는 어차피 니가 여기서 대단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하는 것이 어떻겠냐? 가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아예 눌러 앉는 것도 괜찮고.” 그렇다. 지금 엄마의 생각은 어떻게든 큰 딸을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큰 것 같다. 맏딸인데도 불구하고, 이순신처럼 기댈 수 있는 자식이라기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그런 자식인 것이다. 그나마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나에 대한 희망도 거의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친구들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친구이다. 동시에 자기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 친구이기도 하다. 요즘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으나-‘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만 나를 보여준다. 나의 페르소나에 적합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직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아마도)할 일은 찾아서 하는 사람일 것 같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려고 애쓴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잔소리 같은-’를 듣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받는 보수가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믿을 만하고, 계속 함께 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이유도 있다.

페르소나라는 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판단하기 이전에 내가 만들어 내는 모습일 것이다. ‘이런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는 것이 바로 페르소나가 아닐까? 그래서 융은 페르소나를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라고 표현했나보다. 무의식에서 가지고 있는 나의 열등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페르소나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포장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괴리가 점점 커질수록 사람은 외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의식하는 자아와 환경에 대처해 감에 따라 생기는 가면인 페르소나가 조화롭지 못하면 점점 심리적인 부담을 일으키게 된다.

아마 이순신 역시 그가 의식하는 자아와 그의 페르소나사이가 조화롭지 못했기에 심리적인 부담에서 오는 외로움이 점점 커졌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술에 취했고, 점을 보고, 육체적인 아픔에까지 이르렀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자아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관계들에서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나의 페르소나는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에 당당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정직하고, 항상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나의 자아는 어느 순간순간에 자신이 없어서 자꾸만 쥐구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하고,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경우가 더러 생기고, 타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여유를 갈망하긴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여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자아와 페르소나가 많은 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무조건 페르소나를 버릴 수도, 자아를 좇을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하면서 자신감을 서서히 회복하기도 해야 할 것 같고, 약속을 못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지킬 수 있도록 긍정적은 방법들을 고민해 봐야할 것 같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으면서 나를 타인에게 어느정도는 내보일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할 것 같다. 이미 여유로운 부분에서는 조금 더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할 것이고, 여유롭지 못한 삶의 부분에 대해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여유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고 한발한발 여유로움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자아와 페르소나를 일치시켜 나간다면, 언젠가 그것을 진짜 페르소나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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