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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칼럼

역사 속 한장면, 그리고 나의 역사. -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다.

by 신치 2011. 6. 13.
< 역사속 사건 중 인상적인 한 장면(사건의 한 장면을 상상하여 묘사한 것임)>

1.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신라 (in 삼국유사)

유신은 뜨락에 마른 나무들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불을 붙이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토끼눈을 하고 지켜보는 종들과,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그의 누이와 부모. 유신이 불을 지피고 있는 나뭇장작 앞에 한 여인이 있다. 유신의 둘째 누이 문희가 두 손은 등뒤로 묶인채, 무슨 사람 죽인 죄라도 지은 것마냥 고개는 푹 숙이고, 맨 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유신은 장작에 불을 붙이고는 숨어서 지켜보는 종들을 불러 연기가 멀리멀리 퍼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부채질을 하라고 이른다. 때마침 멀리서 들려오는 여왕님 행차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저 멀리서부터 뽀얀 모래먼지가 일기 시작하더니, 집 앞에서 멈추었다. 춘추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와 유신의 팔을 붙잡더니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정말 자네 누이를 죽일셈인가!’라며 호통을 친다. 그러자 유신이 내 소중한 누이를 지아비 없는 자식 홀로 키우며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게 하느니 지금 저 연기와 함께 보내는게 편하지 않겠나?’ 라며 눈에 독기를 품고 춘추를 향해 소리친다. 그러자 춘추가 유신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신, 내가 잘못했네. 내 무슨 수가 있어도 자네의 누이이자, 소중한 내 사람인 문희를 지금까지처럼 내버려두지 않겠네. 무슨 일이 있어도 태중 아이와 문희를 잘 거둘 것이니 나만 믿고, 그녀를 자유롭게 해 주게나.’ 라고 얘기함으로써, 문희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2.           맹상군 열전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위기를 벗어난다> in 사기열전

오늘도 어김없이 맹상군의 집에는 그를 따르고, 그에게 지혜를 더하고자 하는 이들로 북적인다. 새로운 빈객들이 찾아와 맹상군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따라 새로운 빈객들이 너무 많아 맹상군은 정신이 하나도 없고, 과연 저 많은 빈객들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북적대는 빈객들로 정신없는 와중에 이미 해는 중천에 떴고, 빈객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에 지붕이 떠나갈 정도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든 이야기 소리가 멈추고 그곳에 있던 모든 이가 고개를 돌려 한 곳을 응시하는데맹상군 앞에서 닭울음소리를 낸 새로운 빈객이 싱글벙글 웃으며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리고 몇 초 후, 일제히 터지는 웃음소리. 사람들이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맹상군은 그를 빈객으로 모시고 귀하게 대접했다. 그러자 비웃던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3.     난중일기

어두운 밤, 활쏘기를 하고 돌아와 방에 앉아 있었다. 문지방을 통해 쏟아지는 환한 달빛 덕분에 호롱불이 다 필요없다.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니 어머니 생각, 아내와 아이들 생각과 나라 생각온갖 생각이 만갈래로 흩어진다. 그 때 멀리서 들려오는 빠른 발자국 소리. 소리가 가까워져 눈을 떠보니 종 순화가 헥헥 대며 나를 찾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처음엔 우물쭈물 대다가, 기어코 뱉어내는 말이,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다. 순간 달빛도 사라지고 모든 사물이 사라지더니 눈 앞이 깜깜하다. 그 길로 버선발을 한채 방을 뛰쳐나가 어머니를 외쳤다. 어머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가 또 어디 있으랴심장은 쿵쾅거리고, 가슴이 찢어 질듯이 아려온다. 더 슬픈 것은 지금 어머니 곁을 지키러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 부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 – 문희의 이야기>

문희는 있는데, 문희가 없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문희가 있지만, 문희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이다. 문희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문희의 생각 역시 그 어디에서도 읽을 수가 없다. 활활 타오르는 나무 앞에 손은 묶여 있고, 무릎을 꿇은 채 그녀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 쇼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라며 유신을 원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춘추야, 빨리 와라. 니가 와서 내가 지금 이렇게 개고생한 보람 좀 느껴보자.’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도 조금은 있었을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누가 나를 구해주든 말든, 나는 내가 알아서 내 갈길 잘 갈 테니, 다들 걱정하지 말라고. 내 목숨 내가 지키겠다는데 누가 날 말리겠어라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오빠와 가족으로부터 도망가서, 혼자 아이 키우며 어떻게 살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 꿈은 괜히 사서, 이 고생을 한다고 지지리 복도 없는 년이라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기록한 자들에 의해 구성된다. 철저히 남성중심으로 돌아가던 옛 사회에서 여자가 기록의 중심에 있기란 정말 드문 일이다. 그나마 신라시대에 문희란 인물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까지 남을 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둘러싼 유신과 춘추라는 역사적으로 큰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시대가 여왕의 시대라는 것도 무시하진 못할 것 같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소수의 몇몇 여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녀들과 관련된 남자들과의 관계가 있어야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그림자 혹은 들러리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인 이유다. 슬프게도 내 할머니, 어머니 세대는 여전히 문희와 같은 입장인 경우가 많고, 내 친구들을 보면 문희와 같은 삶을 따라 살 것만 같은 이들이 꽤 있다. 물론 세상이 좋아져서 여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가는 여자들이 많아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21세기의 역사도 여전히 다수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의 역사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가.>

 신치, 그 매력적인 여자의 이름.

신치라는 여인은 옛날 신라시대의 수로부인처럼 용왕님마저 탐낼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가졌거나, 춘추가 한 눈에 반한 문희처럼 뽀얀 피부와 단아한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나 외모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 21세기에 그녀는 처음 본 누구라도 예쁘다라거나 매력적이다라고 느낄 정도의 외모는 전혀 아니었다. 외모에 관심이 없다보니, 그 흔한 화장도 할 줄을 몰랐고, 옷은 그저 몸을 가리는 용도로만 사용했으며, 특별히 외모관리를 해야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신치의 주변 이들이 그녀에게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니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스킨로션에 비비크림만 하나 덩그러니 바르고 나가면 “신치, 이제 우리는 민낯으로 다니면 남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나이야. 옛날처럼 스킨로션만 발라도 솜털 보송보송하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라는 말을 스스럼 없이 던진다. 매스컴에서 아무리 외모가 여자의 경쟁력이라 떠들어도, 친구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그녀였지만, 나이가 들고 눈가에 주름이 하나둘 생기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안그리던 아이라이너도 그리고 눈두덩이가 팬더곰도 되어보고, 얼굴에 분칠도 해봤지만, 어쩐지 영~~ 어색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설프고 불편하게 느껴져 금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결국 그녀는 사회가 원하는 외모 따위는 스스로 거울을 봤을 때, 만족할만한 정도의 수준을 유지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그녀가 관심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에만 전념하기로 한다. 이상하게 그녀는 이럴 때, 이것을 해야지라든가 이 나이엔 이런 모습이어야지라든가 이럴 땐 이렇게 하는게 맞아라는 등등의 일반화되고 보편화된 말들과 그것을 그녀에게 강요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시대에 또래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밟아가는 삶의 절차들’, 혹은 관례들흔히들 얘기하는 보편적이고 평범함을 내세워 그녀에게 강조하는 것들은 왠지 어느 작은 박스 안에 그녀를 구겨 넣어 숨막히고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강요되어 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무조건적으로 하기 싫다기보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때는 모르겠지만, 남들과 트랙 위에서 레이스를 하듯 해치우고 싶지는 않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녀를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자유롭게 살기 시작하니, 이상하게도 한 번보고, 두 번 보고 계속해서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녀를 아는 이들은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묘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마치 시원하고 넓은 그늘이 있는 나무 아래, 사람들이 모여들 듯, 향기롭진 않지만 꿀이 듬뿍 담긴 꽃에 꿀벌들이 모여들듯 그렇게 그녀의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그녀는 모여드는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며 관계를 맺었다. 그랬더니 점점 더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곁에 모여 들게 되었다. 그녀는 외모보다는 그녀의 내면을 갈고 닦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은 그녀의 역사를 그녀 스스로 기록하게 만들었다. 매일의 역사를 기록했고, 그 기록을 그녀의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 둘,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어났다. 그렇게 그녀가 스스로 즐거운 삶을 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그리고 그 일을 즐겁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이 존재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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