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자에 대하여 – 카를 구스타프 융
<융의 분석심리학>
융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융의 심리학은 프로이트가 생물학적, 과학적인데 비해 종교적, 철학적 색채가 짙은 편이다. 리비도를 성적 본능이나 에너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지각,사고, 감정, 충동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로 간주하고, 마음도 쾌감원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닌 이 에너지에 의해 조절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인격)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고 얘기했다. 특히 의식이란 자아와 가면으로 성립되는데, 자아는 의식의 핵심이 되고, 가면은 환경에 대처하는 얼굴(페르소나)이라고 했다. 무의식의 메시지를 완전히 거부하게 되면 자아는 가면(페르소나)와 동일시되고, 이는 실제 나보다 남에게 보이는 나가 더 중요시된다 이렇게 되면 내면적 세계가 약화되고 개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때 무의식은 그림자로 덮혀있는 자신의 개인적무의식을 불러낸다. 그림자는 자아가 정당화한 페르소나가 실제 모습에 있어서 무력, 무능력, 등으로 가득 찬 열등감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무의식은 경험에 바탕을 두고 억압된 원망을 이르는 말이며 기본적으로 의식될 수 있는 것인 개인적 무의식과 전혀 의식되지 않지만 인격 전체를 지배하고 종족적으로 유전되고 개인적인 경험을 초월하게 되는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또 집단적 무의식은 아니마(남성에게 존재하는 여성적 무의식적 인격체)와 아니무스(여성에게 존재하는 남성적 무의식적 인격체)로 나누었다. 아니마는 남성의 마음속에 막연한 느낌이나 기분, 예견적인 육감,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감수성, 개인적 사랑의 능력, 자연에 대한 감정, 등의 여성적 심리경향을 인격화한 것인데, 이는 자녀의 생산과 집안일을 하는 원시적 기능으로서의 여성, 외모의 아름다움을 갖춘 섹스어필한 여성, 모성성과 따뜻하고 헌신적인 마음을 가진 성모와 같은 어머니상의 여성, 아르테미스 여신과 같은 지혜로 충만 되고 힘과 권능을 가진 여성, 이렇게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아니무스는 남을 설득하거나 잔인하고 격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남을 지배하려는 여성의 경우가 아니무스의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도 육체적이고 동물적인 매력의 남성,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말을 잘하는 남성, 지적인 요소를 갖추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며 힘과 권능을 누리는 남성, 전지전능한 신 같은 지혜와 넓은 도량을 지닌 남성 등 4가지로 구분이 된다. 이들은 이상형 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보통 자아가 인식을 못하고, 성별뿐 아니라 성격까지 자신의 원래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자신의 억압된 모든 무의식적 성격과 인격이 하나로 이루어져 나타난다.
<융의 사상>
자기(Self)와 자아(Ego) : 융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는 자기의 세계보다 훨씬 작은 의식과 분별의 세계이다. 자아는 체험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 행동하는 주체이자, 의식 안에 재현되는 모든 것을 의식하고 지향하는 주체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의해 제한된 내용의 의식을 갖게 된다. 자기(Self)는 우리의 생각과 빛이 닿지 않는 무의식의 밑바닥에 깊이 놓여 있는 어둠의 세계이다. 이것은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세계이다. 이는 의식에 의해 완전히 파악이 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자아와 함께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주로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선택했다고 하는 것들이 무의식적인 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일 가능성도 크다. 의식적인 자아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아는 자기와 동일하게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방적이 되거나 팽창되기도 한다. 만약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아가 자기와 점점 먹어지고 단절되는 순간이 오게 되면 이것이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의식으로서의 자아가 무의식으로서의 자기를 지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꿈이다.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꿈을 상징들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쓴다. 꿈이 바로 자기와 자아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인 것이다. 여기에서 자아(의식)가 자기(무의식)를 발견하는 과정이 말하는 ‘자기 실현’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가 않다. 이 과정에 있는 수많은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해석해야 한다.
<칼 융, 기억 꿈 사상>을 통해 융을 두 번째 만나게 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융이 이야기한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그 사이에서 꿈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말이다. 꿈을 거의 꾸지 않는 –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못하는 것이겠지만 – 나로서는 융의 생에 걸쳐 꾸었던 수많은 꿈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그 꿈을 끊임없이 해석해 왔다는 것도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평생을 걸쳐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책의 중간쯤에 접어들면서 그가 신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자서전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과의 교감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그가 하는 이야기가 더 어렵게 다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그의 체험들을 통해 내가 했던 경험들을 돌아보며 ‘아.. 이게 무의식이 튀어나온 상황이었나?’라고 반추해볼 수 있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의사로서의 융의 모습이었다. 작년에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고, 주변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곤란한 경험을 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융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환자 개개인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려고 했던, 융. 그를 조금 더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참고자료>
1) Blog.daum.net/soo55/15089357
2) Ask.nate.com/붐/view.html?n=5499630
3) http://www.depressedmetabolism.com/2008/08/17/carl-jung-on-the-soul-and-death/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융 :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한 인간의 정신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을 수 있는가를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p9
<프롤로그>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하ㅗㄱ하게 삶을 말해준다. p11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p13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p14
1장.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 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어머니의 오랜 부재로 나는 무척 힘들었다.
그 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인생 초기의 이러한 인상들이 수정되었다. p26
이러한 일들은 무의식적인 자살충동이나 이 세상으 ㅣ삶에 대한 숙명적인 저항을 시사하고 있다. p28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으 ㅣ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p37
<불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물이 빠진 후에 시체들이 모랫바닥에 널브러져 있다는 말이 들렸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p39
è 시체에 이토록 집착했던 것이 훗날 그가 의사가 되는 것과는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무엇이든 아주 주의깊게 살펴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렀다. p40
여러 해 동안 나는 가톨릭 성당으로 들어갈 적마다 피와 넘어짐과 예수회 수도사들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을 느꼈다. p41
브라마, 비시누, 시바의 삽화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어머니는 후에 말하기를, 내가 자꾸 그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달라고 했다고 했다.
è 이래서 어릴 적 기억이 중요한가보다. 내가 어릴적 관심이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내는 것이 천복을 찾는데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한편으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혼자서 놀았다. p42
내가 학교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오랫동안 얻지 못했던 놀이친구를 드디어 거기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속에 기묘한 반응을 일으키는 또 다른 어떤 것을 발견했다. p43
크리스마스는 내가 마음껏 축하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독교 축제였다. 다른 축일들은 거의 내 마음을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날은 섣달 그믐밤이었다. p44
è 호불호가 매우 뚜렷한 융이다.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아온 것 같다. 아주 어릴적부터.
나의 밤기도는 낮을 잘 마감해주고 편안히 밤과 잠으로 인도해주는 종교의식적인 피난처인 셈이었다.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의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적 안정이 위협을 받았다. p46
회의를 느끼며 누가 누구인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었고, 나 자신의 불확실성은 기묘하고 매혹적인 어둠의 느낌을 동반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유년시절의 영원성이 번개와도 같이 내게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이 ‘영원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대 분명해졌다. 나 자신과의 불화와 거대한 세계 속에서의 불확실성은 나로 하여금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조치를 하게 했다.
아무도 나의 비밀ㅇㄹ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p48
새로운 종이두루마리 하나를 보탠다는 것은 항상 엄숙한 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기억된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49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화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나는 언제나 그 비밀에 몰두해 있었고 그것을 탐색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p50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그 일이 나중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p52
2장.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겼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p56
나는 어머니가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또다시 행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누이동생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막연한 의혹을 나에게 남겼다. p57
이와 같이 나의 자만심을 뒤이은 열등감이 세상사람들 앞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부당한 일로 여겨졌다. p58
그러면 나는 반항심으로 부모의 안부를 전하지 않거나 괜히 고집을 부리며 수줍어하곤 했다.
è 융은 어릴적에 부모에 대한 분노가 있었나보다.
프록코트에 높은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 인형과 돌을 간직하고 있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기억들은 지하에서 서로 얽혀 있는 하나의 뿌리에서 각자 뻗어나간 작은 가지들과 같으며 무의식의 발달과정에 있는 정류장들과 같다. p59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p61
무엇보다 나는 신비로운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따. 그 세계에는 나무들, 물, 늪, 돌, 짐승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 등이 속해 있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p64
나는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p65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p66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p67
<너는 누구냐?>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68
동시에 이런 뚱뚱하고 무식한 멍청이가 감히 ‘나’를 모욕했다는 사실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p70
나는 두 시대에 살고 있고 서로 다른 두 개의 인격이라는 것이었다. p72
아무도 내게 몸을 어떻게 움직이라고 규칙을 정해주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학교에 간 것이지, 쓸모없고 의미없는 곡예는 하고 싶지 않았다. p73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p75
나는 하느님이 의도한 대로, 스스로 혼자서 출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p78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p80
인간의 용기를 시험할 때 하느님은 비록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을 거부한다. p81
나는 뭔가 나쁜 것, 뭔가 악하고 음울한 것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영예와도 같았다. p83
그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으나 그것으로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p84
è 알고 있는 지식의 양과 현명함과는 상관관계에 있지 않나보다. 알고 있는 지식들을 어떻게 연계시켜서 사고하느냐가 현명함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p85
<자연과 사원>
아버지가 하는 말들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전혀 믿지 못하거나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진부하고 공허하게 들렸다. p86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p87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부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즐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p91
è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은 어쩌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페르소나’라고 하는 것과 실제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의 내면에 있는 본질이 아닐까?
<두 인격의 어머니>
내 유년시절의 체험에 나타난 상징과 그 이미지의 폭력성은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p95
어머니는 특별한 문학적 재능과 취미, 그리고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는 어디서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손님을 무척 환대하고 요리를 아주 잘하며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참으로 사랑스러운 뚱뚱한 나이든 여자라는 모습 뒤에 숨어 있었다.
è 그녀의 본질이 꽃필 수 있는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았거나, 그 기회를 거부했기에 본질이 아닌 또 다른 그녀의 인격이 보여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p97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내 행위를 돌아보면서 만족스러워했다. p99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는 모두 이야기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는 일찍 나를 믿을 만한 친구로 만들어놓고 자신의 여러 가지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p102
è 내 어머니와 비슷하다. 부모님을 떠나기 전이었던 고등학생시절까지 어머니는 내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엄마와 멀어지는 시간이 생기고,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만, 지금은 내가 아닌 여동생에게 엄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한다. 아마 내가 더 이상 믿은 만한 친구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일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정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를 한정된 범위에서만 신뢰하게 되었고, 그러자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 이제는 어머니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p103
<악의 기원>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1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p121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나는 나처럼 별 볼 일없는 가난한 가정 출신의 아이들과 그리 똑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호감을 갖는 편이었다. 그들의 어리석음과 버릇없는 행동으로 자주 신경질이 나려고 했지만 말이다. p125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너는 이런 작문을 지금까지 한 번도 쓴적이 없어.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거야. 그래, 어디서 베꼈지?” p126
è 선생님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융은 굉장히 실망했을 것 같다. 이런 선생님들 때문에 한창 자신의 상상력을 맘껏 펼쳐야 하는 아이들의 꿈이 좌절되고 마는 것이다.
나를 격분시킨 것은 그들이 나를 사기꾼으로 추정하여 나를 도덕적으로 망하게 했다는 점이었다.
나의 비탄과 분노는 위협적으로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p127
내 마음 깊은 곳을 암시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그곳은 단순히 지도 위의 장소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의미들로 채워진 지정된 신의 세계였다. p129
나 자신의 감정과 예감을 눈에 보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었다.
제1의 인격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안 제2의 인격에서 일ㅇ러났고, 또한 수세기에 걸친 ‘노인’의 영역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었다. p131
그런데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p133
또한 내가 인간들과 겪은 경험도 인간 본래의 선함과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는 전혀 다른 면들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나 자신이 동물과 이를 테면 단지 정도의 차이만 날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p134
나는 확실히 붙임성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들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옷이 꾀죄죄한 소년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었다. p136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것만은 아니었다. p138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나의 관심은 다양한 분야로 끌렸다. p139
자연과학은 제1의 인격의 정신적 욕구에 아주 잘 부합하였고, 그에 반해서 인문학이나 역사과목은 제2의 인격을 위한 일종의 유익한 시청각수업인 셈이었다. p140
“그래, 너는 속이는 자다. 너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너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참아내는 법을 배워야만 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없애버리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p143
세속적인 사람들은 물론 그다지 고결하지는 못했으나 그 대신 훨씬 호감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지녔고 신자들보다 더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따뜻하면서 진실했다.
제2의 인격이 임시휴게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제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p144
언제나 방학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굉장한 시간이었다. p145
è 나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방학’이 있으면 좋겠다..ㅜㅜ..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나는 그에게 질문을 하려고 해도 너무 수줍고 어색하고 무지해서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양한 작은 술잔에 너무나 고무되어 예기치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p147
è 융이 술을 처음 마시고 느꼈던 이 감정들 때문에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보여줌에 있어서 느끼는 내면과의 갈등, 혹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요즘 내가 ‘알코올중독’이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거기에는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찾아볼 수 있는 무척 매력적인 도서관이 있었다. p155
이와 관련하여 나는 보방(Vauban : 프랑스의 공병장교)의 축성설계를 쓸모 있는 것이면 모조리 연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기술용어를 즉각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보방에서 시작해 온갖 종류의 현대 축성법을 깊이 공부하여, 제한된 재료를 가지고도 배운 대로 정교하게 축성해보려고 애썼다.
è 하나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융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 p158
2.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이와 같은 막다른 골목길에서 내가 의학을 공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시처럼 떠올랐다. p165
‘결코 따라해서는 안 된다.’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내게 확고했으나 다만 어떻게 공부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내가 최종적으로 의학을 택했을 때도, 인생을 그런 식의 타협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는 언짢은 감정이 있었다.
è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게 선택한다는 것을 ‘타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왠지 공감되는 대목.
제2의 인격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마치 세계의 언저리에서 던져져 깜깜한 무한 속으로 소리없이 가라앉는 하나의 돌멩이 같다는 것이었다. p168
나는 제1의 인격으로서 공부, 돈벌기, 책임, 분규, 혼란, 과실, 복종, 패배 들을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를 향해 밀려오는 폭풍은 시간이었으며, 그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가면서도 동시에 쉼 없이 나를 바짝 따라붙었다. 그것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속으로 탐욕스럽게 끌어들인다.
과거는 무서울 정도로 바로 여기에 실재하며, 충분한 해답으로써 몸값을 치르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끌고 가버린다. p171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내 앞에서 제2의 인격을 부정한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며, 더 나아가 꿈의 출처를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제2의 인격이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제2의 인격이 꿈의 생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더 제1의 인격과 동일화되는 것을 느꼈으며, 이러한 상황은 훨씬 더 포괄적인 제2의 인격의 단순한 일부임이 판명되었다. p172
유년시절에 이미 나에게 밀려온 독특한 ‘종교적’관념들은 자발적으로 생겨난 심상으로, 부모의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세계나 전체 세계의 그와 같은 변혁은 미리부터 오랫동안 그림자를 던졌다. 의식이 필사적으로 그 힘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다. p174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p176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부모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그 때문에 오히려 자주 다툼이 일어났다. 이러한 어러움들이 나중에 아버지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p177
아버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p178
è 나도 아버지가 살아가셨을 때 이런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결실 없는 토론을 할 적마다 아버지와 나는 화를 냈으며, 결국 두 사람 다 특유의 열등감을 안은 채 물러서고 말았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p180
나는 유물론자들이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의를 믿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181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p182
거기서 아버지는 익살스럽게 연설을 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지나간 학생시절의 유쾌한 기운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버지의 인생이 대학졸업과 함께 결정적으로 정지되어버렸다는 사실을 홀연히 깨닫게 되었다. p183
è 왠지 슬프다. 아버지의 인생이 대학졸업과 함께 정지되어버린 이유가 뭘까?
나는 아버지의 다음 숨소리를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지금 돌아가셨구나.” 그 말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에게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p185
하지만 중년의 장중한 시간이 동년배인 외리와 나, 두 사람에게 다가왔을 때 운명은 우리를 더욱 함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è <열정과 기질>에서 얘기한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융에게는 외리였을까? 그랬을 것 같다.
사람들은 정말이지 피상적인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내적인 대화가 오고갔는데, 그가 나에게 드문드문 던진 어떤 질문들을 통해 나는 그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영리한 친구였고, 나에 관해서도 자기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묵계와 그의 변함없는 신의는 나에게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è 이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이로 인해 내가 느꼈던 실망감은 차츰 나를 일종의 체념적인 무관심을 이끌었으며, 이 문제는 경험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나의 확신이 더욱 깊어졌다.
“그 모든 것은 적절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그 정원이란 자연과학을 의미하는 것이다. p192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p193
어머니의 제2의 인격은 이러한 나의 열의에 전적으로 동조했으나, 그 외 주변사람들은 나를 낙심하게 했다. p195
도시의 세계는 학문적인 지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 바깥에 서 있고 싶지 않았고, 괴상한 아이라는 미심쩍은 평판도 듣고 싶지 않았다. p196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p197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그 ‘비밀;에 있어 비슷한 데가 있을지도 몰랐다.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p198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199
나의 친구와 지인들 중에서 공공연히 니체의 지지자라고 밝힌 단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 둘 다 동성애자였다. 한 사람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고, 또 한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천재로 전락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새로운 관념이나 단지 특이한 측면까지도 오직 사실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p201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몇 줄 더 나가자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p210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게 풀려가는 기적 뒤에 내가 정말 잘하는 병리해부학 과목에서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 p211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었다. p213
나는 소위 일종의 지식인집단에 속해 있었고 특정한 사회적 ‘동아리에 들어 이었다. 나는 여기에 반감을 느꼈다. 나 자신을 그런 식으로 묶어 두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p214
이곳은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했다. p215
반년 동안 나는 정신병원 생활과 그 정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수도원 벽 안에 가두고는,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p216
내가 연구에 몰두하고 스스로를 밀실로 몰아넣는 바람에 동료들로부터 멀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정신의학이 나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 정신의학의 정신을 익히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물론 알지 못했다. p217
3.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의 중심주제로 삼은 것은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화급한 의문이었다. p221
내가 그녀에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말하지 않아야 하는가? 내가 큰 수술을 감행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나에게 중대한 양심의 문제였고 동시에 의무의 갈등을 의미했다. p224
정신의학 사레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p225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p226
환자 자신은 병의 심리적 원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연상검사를 실시하여 이번 기회에 그가 심한 모성콤플렉스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음주는 괴로운 상황을 잊기 위해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 p231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라든지 어머니가 간섭하는대로 따라야만 할 때마다 자신의 기분을 마비시키거나 날려버리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è 요즘 나의 감정이랑 너무 비슷해서 완전 공감..ㅜㅜ..
그도 모르게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알코올중독으로 회사 직책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서를 발급해주었다. 그를 해고해야한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나의 충고를 따랐고, 아들은 물론 나에게 몹시 화를 냈다.
나는 강제적인 방법만이 그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233
그런 죄(살인)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살인범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셈이다. p235
나는 정신병이 야기할 수 있는 파괴의 정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나 그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p236
그후로 나는 모든 주의를 정신병에서 의미있는 관련성들을 찾는 데 돌리게 되었다. p238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p239
그리하여 그녀는 무의식의 붕괴된 환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지는 않게 되었다.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p241
그 무렵에 내가 했던 연구조사들이 오늘날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것 역시 나에게는 기이하게 여겨진다. p242
그녀가 그런 아름다운 망상을 가지고 그토록 재미있는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어떤 의미에서는 친구 같은 노파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의 괴기한 헛소리의 혼돈 속에서도 인간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p243
소녀시절에 당했던 근친상간으로 인해 그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굴욕을 느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는 고양된 기분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소위 신화의 영역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근친상간은 전통적으로 왕과 신들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p246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꿈의 분석>
사람들이 문헌에서 환자의 저항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어 환자에게 뭔가 강요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료는 환자로부터 자연스럽게 진전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의사는 소위 ‘방법’에 관하여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규격화된 일정한 방식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론적인 전제는 다만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한다.
분석은 일종의 대화이며 여기에 당사자 두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p249
의사는 모든 이론적인 전제에 매이지 않고, 환자를 실제로 충동질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한다.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오늘날에는 예전과는 달리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이 자연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즉 각 개인과 다수의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정신의 변이는 위험하다! p250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p251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이 상황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하고 항상 자문해보아야 한다. p252
꿈은 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보상 바로 그것이다.
환자가 나에게 무엇을 예시하는가?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è 당시의 융에게 상담 받은 사람들이 부럽다.
그의 정상성 경향은 일종의 인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인격은 무의식과 대면하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폭파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잠재성 정신병은 흔히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정신치료자에게 ‘진딧물’인 셈이다. 이런 사례에서는 특히 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257
이런 직무는 기나긴 기간의 철저한 수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교양이 요구된다. p258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드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p259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아내의 태도에 환자에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담이 되었다. p260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나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환자가 자기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하는 일이었다. p261
그녀는 단지 지적인 것만 인지하고 있었으며, 의미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p263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그런 이유로 인격발달이라는 관념이 나에게는 처음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p264
환자가 자기 자신의 길을 감으로써 스스로 책임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저항은 특히 완강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개 그런 저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경고를 뜻하기 때문이다. p266
많은 경우 의사 편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요구 될 때도 있다. p267
행운이든 불행이든 세상의 관심을 끌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상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전례가 없는 발전과 재앙을 두루 겪은 사람들을 의사는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모든 삶을 바치기까지 끝없이 열광할 만한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p269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여져 있는 틈이 메어지는 순간 사라진다. p270
감정의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p271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로서는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p272
è 이 사람. 정말 멋있다.
4.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는 정신병 환자를 임상적으로 밖에서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p275
연상장애는 자극어가 정신적 상처나 갈등을 건드릴 적마다 일어났다. p276
어떤 사례에서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맞았으나 다른 사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튼 프로이트는 새로운 탐구의 길을 열었으며, 그 무렵의 프로이트에 대한 격분은 나로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p278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말들은 나의 의구심과 의혹을 씻어 주지 못했다. 내가 그러한 점들을 여러 번 표명했지만, 그럴 적마다 그는 나의 경험부족을 내세웠다. p279ㅏ
왜냐하면 교리, 즉 논의할 필요도 없는 신앙고백은 오직 의심을 단번에 눌러버리려고 할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판단과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개인적인 권력충동과 관계가 있을 뿐이다. p281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p285
신성한 힘의 체험으로 마음이 격렬히 동요하게 되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실이 끊어질 위험이 항상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긍정으로, 또 다른 사람은 그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부정으로 빠지게 된다. p287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리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295
은밀한 죽음의 소망이 그 꿈에 잠재되어 있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었다. p297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의미는 이미 인식된 바 있으나 소위 악의적으로 의식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p300
프로이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는 무엇보다 요술이나 속임수, 그리고 어떤 자의적인 것도 끼어들 수 없다. p301
그 꿈을 꾸었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프로이트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비판적이었다. 이런 분열된 태도는 내가 아직도 그 사태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성찰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프로이트의 인격에 감명을 받아, 나는 될 수 있는 한 나 자신의 판단은 한쪽으로 밀어놓고 비판을 억제했다. p303
마음을 탐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외에 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자연(본성)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신경증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307
그들이 의지하여 설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어떤 삶의 방식도 그것이 다른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 한 버틸 수 없다. 완전히 이성적인 삶의 영위란 경험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대개 불가능하다.
나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신경증을 치료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프로이트나 그의 제자들이 정신분석 이론과 이론과 실천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숨겨야 할 것인가, 친교가 깨지는 모험을 할 것인가? p309
나는 ‘희생’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310
철학적으로 성찰해보면, 오늘날의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들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의 과제로 남아 있다. p312
5. 내 안의 여인 아니마
<신화와 환상>
무엇보다도 환자를 새로운 태도로 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환자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p315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p318
이 꿈과 비슷한 꿈들과 무의식의 실제 체험을 통해 나는 이 유물이 결코 죽은 형태가 아니라 살아 잇는 정신에 속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었다. p319
하지만 내 신화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은 느끼고 있었다. p322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 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만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 했다. p324
나는 자주 흥분되어 내 감정을 요가로 제어해야만 했다. p325
나는 감정 배후에 숨은 이미지를 의식화시키는 것이 치료의 관점에서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지 알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나갔다. 그리고 환상이 생기게 된 정신적인 전제들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p326
가장 심각한 어려움들 중 하나는 나의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p327
소위 돕는 자인 나는 환자의 환상 내용을 나 자신의 견지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쓸모도 별로 없는 몇 가지 이론적인 편견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28
<필레몬과의 대화>
만일 네가 이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는 너 자신을 총으로 쏘아야 한다!” 내 침실용 탁자 안에는 장전된 권총이 있었다. 나는 불안해졌다. p331
내가 그림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 우리집 정원 못가에서 죽은 물총새를 발견했다!
필레몬과 또 다른 환상의 형상들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335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는 주장했다. “나는 신들이 황금과 보석 속에 숨겨놓은 바로 그것이다.”
필레몬은 정신적 측면, 즉 ‘이해력’이지만 카는 이와 반대로 그리스 연금술의 안트로파리온 같은 자연혼이다. p338
카는 모든 것을 실재화하는 바로 그것이지만, 물총새의 혼, 즉 이해력을 덮어버리거나 아름다움, 즉 ‘영원한 반조’로 대치한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재능있는 정신병 환자로 나에 대해 심한 전이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내부에서 하나의 살아 있는 형상이 되었다. p339
나는 ‘내 안의 여인’이 언어중추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여 그녀에게 내 말을 사용하도록 제안했다.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즉시 자신의 견해를 장광설로 늘어놓았다.
내 안에서 생겨난 한 여인이 나의 생각에 간섭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p340
매일 저녁 나는 글쓰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아니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그녀는 나의 환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나는 차츰 내 생각과 그 소리의 내용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p341
나는 내면의 이미지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 이미지들의 의미를 나의 꿈을 통해 직접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중개자가 필요하지 않다. p343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
나 자신에 대한 실험에서 정신병의 구성요소들을 제시하는 심리적 내용을 정신과의사로서 일일이 추적하게 된 것은 물론 하나의 아이러니다. 그 내용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정신병 환자를 치명적인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식 이미지의 세계다.
신화적 환상은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것은 금지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p345
환상에 관한 작업을 하던 바로 그 무렵, 물론 나는 ‘이승’에 발판이 필요했다. 그것은 가족이며 직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과 직업은 내가 언제나 돌아올 수 잇는 기반으로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내가 실제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임을 증명했다. p346
그 요구는 외부에서 내게로 온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로부터 왔다.
나는 원초적 체험을 스스로 겪어야 했고, 더 나아가 내가 체험한 것을 현실의 토대 위에 세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체험은 생명력 없는 주관적 가설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p350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미지와 그 내용을 일일이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무엇보다 삶 속에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개 소홀히 하는 일이다. p351
무의식의 이미지는 인간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준다. 그것에 대한 몰이해와 윤리적 의무의 결핍으로 많은 개인이 전체성을 상실하고 분열적 성질로 변해 고통을 당하게 된다. p352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p353
어떤 그럴듯한 영감은 자신의 공로로 돌리고, 이에 반해 열등한 반응은 우연히 일어났거나 낯선 원천에서 나온 것으로 돌리는 의식의 오만과 일반적인 편견에서 나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p356
나는 자아가 최고의 위치가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만다라가 중심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것은 모든 길의 표현이다. 그것은 중심을 향한 길, 즉 개성화의 길이다. p357
꿈을 통한 명중성은 나로 하여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그 무렵 체험하여 기록한 것을 과학적 작업의 그릇 속에서 추출해내기까지 따지고 보면 45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 p361
6. 연금술을 발견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내가 잘 모르는 그 부속건물은 내 인격의 일부, 즉 나 자신의 한 측면이었다. 그것은 내게 속해 있으나 내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p368
역사 없이는 심리학, 특히 무의식의 심리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73
현대 물리학자가 모든 힘을 이를 테면 열에서만 끌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역시 모든 본능을 권력이나 성의 개념 따위로 분류 할 수 없다. p377
<성배전설과 동물 상징>
‘그리스도의 작은 물고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자신이 물고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영혼의 치유가 필요한 무의식적인 본성을 지닌 심령들이다. p388
나의 책은 단지 대중들이 숙고하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한 개인의 목소리요 문제제기일 뿐이었다. p389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p397
7.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곳>
나는 가장 깊은 생각과 나 자신의 인식들을 이를 테면 돌에 표현하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 p401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것은 고독현상으로, 외적인 공허와 정적을 사람들 무리의 이미지로 보상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 현상이라고 한다. p413
<카르마>
즉, 영원한 인간권리에 대한 존경, 옛것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문화와 지성사의 연속성 등이 그것이었다. p420
옛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p421
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에 반해 역행을 통한 개혁은 일반적으로 비용이 덜 들고 더 오래가는 법이다. p422
8. 여행
<북아프리카, 순진한 인류의 청소년기로!>
1920년 초에 한 친구가 튀니지로 사업차 여행을 떠나는데 자기와 동행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è 융은 자신에게 오는 우연한 기회를 망설임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랍어를 모르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의 깊게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p427
내 통역은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많고 또한 그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확인시켜주었다. p429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한편으로는 공간에서의 방향설정과 외부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적인 충동과 격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성찰을 하지 않고 자아는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 p433
어린이답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훨씬 완벽한 ‘자기’의 이미지, 즉 꾸밈없는 개성을 갖춘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페르소나(자아가 외부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세계가 바라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를 위하여 인간의 전체상에서 떨어져나간 인격부분에 해당된다. p437
나는 걸음걸음마다 유럽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므로 우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로 인해 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간 거리를 두고 냉담하게 대할 것이 강조되었다. p438
외견상 전혀 다르고 낯선 아랍의 환경이 우리가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선사시대에 대한 원초적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이 갈등의 형태로 다시금 우리와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의식 속에 붙잡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히ㅗ복할 것인가,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보아야 한다. p439
<푸에블로 인디언,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들>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밖에서 본다는 것은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집단정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데, 이러한 동화과정에서 국가적 편견과 고유한 특성들로부터 연유한 온갖 부담되는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p441
이제 나는 처음으로 유럽의 광경을 사하라사막으로부터 그 문명에 둘러싸인 채 관찰하였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얼마나 백인의 문화의식 속에 갇혀 있거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깨달았다. p442
나는 그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 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p443
지식은 우리를 성숙하게 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이전에 살던 신화적인 세계에서 더욱 멀리 떨어지게 한다.
즉 제의적 행위가 태양에 마술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따져보면 역시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처음에 짐작했던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p452
<케냐와 우간다, 아프리카의 고독을 겪다>
조물주에서 나온 것은 모두 좋다. – 루소 p453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의 시골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으며, 오천 년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검은 남자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진기한 체험의 감흥이 야생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p455
선생도 아시다시피 이곳은 인간의 나라가 아니고 신의 나라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걱정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p458
‘여성의 평등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동반관계가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원시사회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여자가 바라는 대로 무의식적으로 충분히 잘 조절되고 있다. p467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집, 작은 가축, 샴바,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p469
현대사회에서 동성애가 맡은 역할은 대단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모성콤플렉스의 결과이며 일부는 자연의 합목적적 현상(번식의 저지!)이다. p470
분명한 것은, 사실은 그들도 단지 자기들이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 뿐,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행위에서 아무런 의미도 파악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도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밝힌다든지 부활절 달걀을 숨긴다든지 할 때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의식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p475
나는 이러한 낙관주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p476
내 친구와 나는 벌떡 일어나 춤추는 무리에 섞였다.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코뿔소가죽 채찍을 흔들며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그들이 우리의 참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p481
새로운 인상들을 받아들이고 한없는 생각의 바다를 포용하는 나의 능력이 쉽게 바닥을 보인 것은 괴롭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p483
<인도, 이방의 문화에서 유럽의 뿌리로>
인도에서 나는 아주 다양한 이방문화를 처음으로 직접 인상깊게 대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여행에서는 문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인상들이 결정적이었다. p498
나는 인도 성자들의 인물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감히 그들을 개별적인 현상으로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p489
인도인의 목적은 도덕적인 완전성이 아니라 니르드반드바 상태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며 거기에 걸맞게 또한 명상을 통해서 형상이 없는 공의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 p490
다르마(부처의 가르침, 계율)를 의식하고 실행하지 않고는 어떠한 정신적 정화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만약 누군가가 의식을 빛을 꺼버린다면 세계는 ‘무’로 빠져들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부처는 통찰에 따라 행동했다. 부처는 자신의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 죽었다. p496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명으로 살려낸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또한 ‘변화된 모양으로’ 사색적인 사람들에 의해 다시 새로 인식되는 법이다. 위대한 과거의 것들은 우리가 착각하듯 죽지 않고 단지 그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p500
이 꽃의 아름다움처럼 인생도 그렇게 지나가버리고 말도다. 신이시여, 나와 하몎 이 제물의 은덕을 누리소서. p502
인도는 어떤 자취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p503
<라벤나와 로마, 보이는 환상과 보이지 않는 실재>
내 기억력이 조금도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나는 화가 났다. p505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 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p507
9. 환상들
<생의 한계점에 이르러>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p516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p517
<융합의 신비>
나를 치료한 의사에게 나는 저항감을 느꼈다. 그가 나를 다시 삶으로 되돌려놓았기 떄문이었다. p520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p525
내가 그 꿈과 환상에서 체험한 객관성은 완성된 개성화에 속한다. 그것은 가치평가라든가 우리가 감정적인 유대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감정적인 유대는 대체로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투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자기 자신이 되고 객관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투사를 회수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관계는 강요의 에속으로 부담을 주는 열망의 관계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그로 말미암아 상대방과 우리 자신이 부자유하게 된다. p526
이제는 나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애쓰지 않고 생각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을 앓은 후에 비로소 나는 자신의 숙명을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럼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자아는 굴복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p527
10. 사후의 삶에 관하여
<꿈과 예감>
엄밀히 말해 내 저작들은 이승과 저승의 조화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려는 늘 새로워지는 시도였다. p531
선입견은 정신적인 삶이 풍성하게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손상을 입힌다.
비판적 이성은 다른 많은 신화적 관념뿐만 아니라 사후의 삶에 관한 관념도 없애버린 듯하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이유는 오늘날 인간이 대부분 오로지 그들의 의식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들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p532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신화적 측면은 오늘날 심히 무시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치유를 가져오는 법이다.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 광채를 사람들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p533
아주 비참한 인생을 살았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너무나 혐오감을 느낀 나머지 인생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 더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인간은 사후의 생에 관해 견해를 짜내거나 묘사하는 데 가능한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p535
무의식과 신하ㅗ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p536
이런 체험들을 하면 우리는 무의식의 가능성과 능력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갖게 된다. 다만 우리는 비평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그러한 ‘전달(무의식이 전해주는 내용들)’이 언제나 주관적인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실제와 부합하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죽은 자들은 모두 죽음 직후에 그들 인생의 종합적인 경험을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p541
어쨌든 부인하는 자는 ‘무’를 향해 가는 반면에, 원형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p542
<신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죽은 자의 혼령들도 그들이 죽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알고 있던 것만 ‘알고’ 그외에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의 앎에 참여하기 위해 인생 속으로 밀고들어오려고 애쓴다.
살아 있는 사람의 혼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죽은 자에 비해 유리하다. 즉, 명쾌하고 결정적인 인식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p546
아내가 사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정신적 발전에 종사하고 있다는 생각은 내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리하여 그 꿈은 나를 안심시키는 어떤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p549
수학 방정식이 어떤 물리적 현실에 해당하는지 우리가 모르듯이, 신화적 현실 또한 어떤 정신적 현실에 해당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 앞에서 수를 예로 들어 제시했듯이 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p552
그것은 한편으로는 따뜻함과 기쁨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충격과 슬픔으로 상반된 감정의 끝없는 변화였다.
그 대극은 죽음이 한 번은 자아의 관점에서 또 한 번은 영혼의 면에서 표현된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 그것은 재앙으로 악하고 무자비한 힘이 한 인간을 때려죽인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p555
사람들이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인간은 삶의 한가운데서 저승으로 끌려가고, 쓸모없는 인간은 늙도록 살아남는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은 죽음이 본래 하나의 축제라는 지각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p556
시공간의 상대성 때문에 무의식은 지각만을 처리하는 의식에 비해 더 나은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후의 생에 대한 우리의 신화와 관련하여 꿈이 주는 약간의 암시나 이와 비슷한 무의식의 자발적인 발현을 통해 가르침을 받고 있다. p558
<단일성과 무한성>
서양인은 외향적인 경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내향적인 경향이 강한 듯하다.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p560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p562
일반적으로 인류가 저승에 관해 지어내는 관념들은 그들이 희망적인 전망과 선입견이 그 형성과정에 개입하게 된다. p565
이해에 굶주린 본능은 무엇이 일어났으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기 위해, 또한 그것을 넘어서 인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적은 암시에서 신화적 표상을 찾아내기 위해, 이를테면 의식을 만든 셈이다. p567
나는 깊은 충격을 받고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나를 명상하고 있었구나.’그가 하나의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나다.
è 영화 ‘인셉션’이 생각난다.
우리의 기초는 자아의식, 즉 자아를 중심점으로 하는 빛의 영역이고 그것이 우리의 세계를 표현한다. 거기서 우리는 비밀에 싸인 어둠의 세계를 바라본다. p571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 “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를 때는 개인적인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위들 때문에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고집할 것이다. 아마도 ‘나의’ 재능이나 ‘나의’ 미모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p572
인간의 과제는 이를 테면 그것과는 정반대로, 무의식에서 멀리 오는 것에 관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거나 동일시하지 않고 그것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태에 있다는 것은 의식을 형성해가야 하는 그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p574
11. 만년의 사상
<대극의 통합을 위하여>
‘이론’은 나의 삶에 속한 존재형태이며 삶의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먹고 마시는 일과 마찬가지로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p577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지금 기독교세계는 실제로 악의 원리와 대립하고 있다. p579
윤리적 행위의 판단기준은 사람들이 ‘선’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정언적 명령의 성격을 띠고 있고, 이른바 악은 무조건 피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 이제는 더 이상 기초할 수 없다.
모든 인간 판단의 불완전성은 우리의 견해가 어느 때나 옳은 것이냐 하는 회의가 들게 한다.
도덕적 판단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며 특유한 심리적 결과가 뒤따른다. p580
이제 도덕적 평가의 근거가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우리가 알기 때문에, 윤리적 결단은 오직 신을 따름으로서 보증할 수 있는 주관적이며 창조적인 행위가 된다.
하지만 윤리적 결단이 요구한다면, 버릇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p581
인간의 일반적인 불충분함을 제외하면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이 교육에 있다. 교육은 오로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각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 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선을 행할 수 있으며 어떤 파렴치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는지 냉철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전자를 사실로 여기거나 후자를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p582
신화가 생동하지 않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으면 신화는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신화는 벙어리가 되었고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p584
일찍이 그노시스파로부터 제기된, “어디서 악이 오는가?”하는 문제는 기독교세계에서는 해답을 얻지 못했다. 마귀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오리게네스가 슬쩍 흘린 생각들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여기에 대해 해명해야 하며 답변을 해야 한다. p585
우리가 그렇게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신화의 도움이 없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번에는 아주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인간정신이 중요한 문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p586
사람들은 그것이 핵의 분열과 융합이나 우주 로켓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그와 동시에 인간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p588
분석치료가 ‘그림자’를 의식화하는 한 일종의 분열과 대극긴장을 조성하게 된다. p589
우리는 미지의 것, 생소한 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꿈이나 어떤 착상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지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말이다. p591
빛이 어둠 속에서 생겨나며 창조주가 그의 창조를 의식하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인간은 성찰하는 정신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는 인간 본성이 특히 의식의발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그의 정신을 통하여 증명한다. p594
그 의미의 요소는 분화된 뇌와 항온동물의 단계에서 마침내 자신을 표명할 수 있는 길을 우연처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의도되거나 미리 내다본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으로부터 예감되고, 느낌으로 알게 되고, 손으로 더듬어 찾아진 것이다. p595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p597
신의 경우 대극의 복합으로서 의미심장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실과 허구, 선과 악이 다 될 수 있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성으로 그는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 자신’이 무엇인지도 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의식의 약점이요 무의식에 대한 불안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한 그가 의도적으로 고안해낸 것과 다른 원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그에게 흘러들어온 것을 서로 구별하지 못하도록 그것이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다. p598
<원형, 그 역동적인 에너지>
남들과 뒤섞이지 않도록 개인을 보호하는 데는 지키고자 하거나 지켜야 하는 비밀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다.
이런 가짜 비밀들 가운데는 역설적이게도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도 전혀 모르는 진짜 비밀이 있다.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p600
비밀결사는 개성화에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다.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601
즉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우리가 표현하는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는(그리하여 ‘미친 사람’의 범주에 속하는 듯이 보이는)비밀만이 퇴보를 막아줄 수 있다. P603
이러한 내적 대극과의 대결만큼 의식화를 증대시키는 것은 없다.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의 적잖은 부분이 내면에 이르게 될 뿐 아니라 외부세계도 그만큼 비고 부담을 덜게 된다. p605
자아는 양가감정과 이중의미를 갖게 되며 몹시 어려운 지경에 빠지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집단의 울타리와 그 주거지를 결코 떠나지 않는 것이 권장할 만한 일처럼 보인다. 오직 이것들만이 내적 갈등에 대한 방어를 약속해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이 개인적인 길을 가도록 내몰린다. 이들은 무척 짧은 기간에 인간 본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알아갈 것이다. p606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러한 에너지를 탈환하거나 소유하고자 시도하여 심지어 그것을 차지했다고 착각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그 에너지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상한 상황은 의식 내용만이 정신의 존재형태라고 간주되는 곳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p607
경험 가능성이 없는 사물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쉽게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어린아이의 정신은 전의식 상태에서 결코 백지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개성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게다가 온갖 특수한 인간적 본능들을 갖추고 있고, 또한 보다 고급스러운 기능들의 선험적 토대를 갖추고 있다.
자아가 이런 복잡한 바탕에서 생성되고 그것에 의해 일생 동안 유지되는 것이다. p610
어떻게 하면 나의 환자들로 하여금 건강한 바탕을 다시금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최우선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p611
è 이런 의사를 좀 만나보고 싶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진술은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신은 특히 역동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 역동적인 과정은 정신의 대극성과 그 내용의 토대에 기인하며 양극간의 격차를 보여주고 잇다. p613
되는대로 말하는 것, 즉 충분한 근거 없이 진술하는 것은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금지되어 있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진술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진술이 저지되거나 무시되면, 의사로서의 경험이나 마음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이 보여주듯 정신적 결핍현상이 생긴다. 개인의 경우에 그것은 노이로제 증상으로 나타나고, 노이로제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관련되었을 때는 집단적인 망상 형성이 발생한다.
원형적 진술들은 본능의 전제조건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p617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p619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가 한줌의 지혜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며 미지를 미지라고, 즉 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열등함, 불완정성, 그리고 의존성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진실과 오류 사이에서 선택의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p620
12.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강에 있지만 그들은 대개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거기 서서 자연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할 뿐이다.
강물을 길으려면 허리를 얼마만큼은 굽혀야 하는 법이다. p623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정도 그 배후의 과정을 인지하는 편이어서 내적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끌어낼 수 없거나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소년이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대부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4
우리가 비밀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을 지니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비밀로 가득 찬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p625
나는 나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에 대해 참을성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내적인 법칙을 따라야 했다.
è 자기 의지와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창피스럽게도/어떤 힘이 우리 심장을 앗아간다./천상에 있는 모든 것은 제물을 요구하므로./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좋은 일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휠덜린)
이런 부자유함은 나에게 큰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p626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p628
그런데 대부분의 일이 저절로 숙명적으로 전개되었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p629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p630
::: 편집자의 말 :::
내적 동요가 있었던 시간이 지나자, 그의 유년시절로부터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이미지들이 떠올라왔다. p632
사람이 늙으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젊은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기 마련이지. p635
항상 그랬듯이 내 인생에서 모든 외적인 것은 우연한 것이고, 오직 내적인 것만이 실체성이 있으며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숙명적이네. p636
대개 사람들은 내게 부탁할 일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관해서는 내가 언급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러한 인물들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는지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p638
그는 일반대중의 반응을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종교적인 경험과 생각을 소맂ㄱ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p642
자기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에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애와 작업의 의미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융의 회상록은 그의 학문적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가 어떻게 사상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인식의 배후에 있는 주관적 체험을 보고하는 것이 독자를 연구자의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도가 될 것이다. p643
3. 내가 저자라면
1)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 융의 어릴 적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를 알 수 있게 정리해서 그런지 전반적인 흐름을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 각 장의 제목 아래에는 그 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략하고 적고 있어서 각 장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 수월했다.
- 중간중간에 나오는 옮긴이의 해석은 적절한 시점에 본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작은 것을 큰 것과 비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융 자신과 니체를 비교해본다는 의미임 – 옮긴이) p198’ 이런 부분들 말이다.
- 다양한 사례들-꿈, 체험 등-이 많이 나와서 좋았다. 특히 융의 꿈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본인의 꿈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현실과 연결하는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꿈을 꽤 상세하고 기억하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다.
- 융의 사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유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순서로 적어가고 있는데, 그와 더불어 융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좋았다.
2)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
- 아마도 쉽게 쓰려고 노력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심오한 인생을 살아온 융의 역사를 이해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특히 각종 분석심리학 관련 개념이나 용어들이 심리학과 거리가 먼 나에게 이해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책 가장 뒤쪽에 용어가 따로 정리가 되어 있긴 했지만, 오히려 주석이나 단어 옆에 괄호로 뜻을 적어 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 많지는 않았지만, 신화와 관련된 단어들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특히 신화나 심리학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3) 내가 저자라면…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은 융이 어떻게 그의 학문적 사상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상이 어떤 체험을 거쳐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융의 정신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지’가 핵심이었기에 시간의 순서를 큰 틀로 잡았을 것 같다.
만약에 내가 이 책을 썼다면, 융의 인생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묶은 카테고리별로 다음과 같이 나누었을 것 같다.
1. 놀이 – 유년시절의 놀이와 그 의미에 대하여
2. 꿈 – 어릴적부터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의 꿈들과 그것이 그가 마주친 현실들과의 관계 또는 해석
3. 가족 –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하여
4. 학문 – 칸트,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등과의 만남, 그리고 자연과학.
5. 신화 – 융의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신화에 대해서 아마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것 같다. 여기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6. 연금술 –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그의 체험들. 그의 인생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에 관하여.
7. 여행 – 그의 인생의 깨달음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서 따로 챕터를 구성.
8. 의사라는 직업 – 의사로서 그가 가졌던 신념, 그리고 환자와의 에피소드 등
9. 사랑 –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지는 않지만, 왠지 융이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융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가 궁금하다.
10. 사후세계 –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그의 경험을 통한 그의 또 다른 변화 이야기.
이렇게 구성해봤을 것 같다. 아무래도 시간순서대로의 나열이 아니기 때문에 각 챕터별로 겹쳐지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하나의 사건이 여러 가지 주제에서 다뤄진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각도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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