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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책 이야기

02. 변신이야기 - 오비디우스

by 신치 2011. 6. 9.

1.     저자에 대하여 오비디우스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43년에 중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고대 로마의 시인이다. 오비디우스는 아버지의 희

망에 따라 관리가 되기 위해 로마에서 수사학과 법률을 배우게 된다. 법조계로 진출하기를 희망했던 아버지를 만족시키기기 위해 공부를 했으나, 본인은 시작이나 화려한 사교를 즐겼고, 법정변론을 하려해도 말이 저절로 시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처럼 오비디우스는 재주있고, 유쾌하고, 유복한 사람이었고, 당시의 로마는 젋은 문학지망생들을 고무하여 현실적 문제들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문학적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최적의 도시였다.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로 유학을 하고 로마로 돌아 온후, 관직에 오르기까지 했으나 결국 시인이 되고자 마음을 굳힌다. 그리고 문단으로 진출한 오비디우스는 오래지 않아 빛나는 기지와 엄청난 기억력, 반듯한 사교술로 문단과 사교계의 총아가 된다. 이 때 그는 사랑에 대한 점잖은 교과서적 가르침을 우롱하면서 구체적 연애 기술과 활달한 사랑법을 가르치기 위한 <사랑의 기술>, 옛 전설 속의 유명한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여류의 편지>-신화적 요소와 세속적 풍슴이 뒤얽혀 미묘한 효과를 나타내며, 이는 당시 로마 상류사회의 취미와 일치된 것일 것-이란 책을 쓴다. 이 때 사교계에서 불나방이던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와 이 딸의 딸 율리아 두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된다. 이로써 아우구스투스의 눈 밖에 나고 결국 오비디우스는 토미스(,루마니아 콘스탄티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이때 정신을 번쩍 차리고 연애시와는 결하고, 쓴 책이 바로 당시 떠돌던 소 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한 줄에 꿰어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신성을 부여한 <메타모르포시스(변신이야기1,2)>이다. 이는 서사시의 형식으로 쓰여졌고, 그리스 로마신화도 <메타모르포시스>를 인용할 정도로 신화를 집대성한 책이다. 풍부한 상상력에 의해 회화적 묘사로 넘쳐 흐르고 있으나, 신화를 다루면서도 당시 상류사회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아우구스투스 황제에서 헌정하려던 <행사력>을 제작 중이던 서기 8년 황제로부터 돌연 로마 추방을 선고 받았다. 오비디우스의 말년은 전반의 화려함에 비해 무척이나 비참했다. 귀양 후, 유배된 시인의 불행과 도시에 대한 귀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흑해로부터의 편지>,<비가 Tristia>를 썼고, 흑해 연안의 벽지 토미스에서 호소와 애원이 담긴 서신을 고국에 10년간 띄웠지만 결국 오비디우스는 귀양지에서 17,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비디우스의 작품에는 세련된 감각과 수사가 풍부하기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읽혔으며,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사진이 오비디우스라면, 언제쯤일까? 깡마른 얼굴을 보면 귀양살이 할 때의 모습인 것 같고, 얼굴에 비해 큰 체구는 귀양살이에서 도시에 대한 귀환을 기다리며 끊임없이 본인의 건강을 챙겼을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슬픈 얼굴에서는 결국 도시와 사람들을 그리워하다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아쉬움이 베어나오는 것 같다. 월계관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을 파고 들며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불사를 얻었음을 축복하는 듯 하다.

변신이야기를 읽으면서 만난 오비디우스는 철학과 역사, 과학 그리고 문학을 넘나들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양한 이야기로 맛깔나게 전달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번역된 책에서는 산문체이지만, 원본이 시로 되어 있다는 것은 더더욱 그가 뛰어난 문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부분이다. 이처럼 많고, 다양한 이야기를 짧은 글로 엮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 전반에서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그를 귀양살이 보낸 왕과 그것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던 오비디우스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이런 슬픔과 도시에 대한 간절함이 2000년이 넘게 매우 다양한 사람들에 회자될 수 있는 이런 작품을 그의 내면에서 이끌어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영혼은 별이 되었을지라도, 2000년대를 살고 있는 내게도 그의 이름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바랬던 것이기에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참고자료>

1)     Blog.daum.net/gimmeshelter/13308262 변신이야기(작품해설)

2)     Ko.wikipedia.org/wiki/오비디우스

3)     100.naver.com/100.nhn?docid=115367

4)     Kirjasto.sci.fi/ovidius.htm

5)     Dailymotion.com/ovidius-naso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이야기


3.     내가 저자라면

A.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1)     그림 : 어디선가 한번은 봤음직한 사진들. 그 사진이 나오게 된 배경과 더불어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것은 글을 읽으면서도 뛰어난 묘사덕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점에 그 재미를 배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선택인 것 같다. 특히 한번쯤을 봤던 그림을 보고 난 후,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2)     이야기의 흐름 : 초기 문명이 발달한 순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전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며, 내용의 흐름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

3)     세밀한 묘사 : 각 장면 하나하나를 글로써 풀고 있지만, 오비디우스의 탁월한 장면이나 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 덕분에 글을 읽으면서 충분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너무 잔인한 장면들 역시도 잔혹하게 묘사되어, 이건 내가 책을 읽고 있는지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건지 때론 헷갈릴 정도다.

4)     신화이야기와 일상의 매칭 : 신화를 통해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해바라기, 박쥐, 각종 동물들이 만들어지게 된 근원(?)을 알 수 있게 되어 왠지 재미있다. 세상 만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성경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들. 조금 잔혹하다 싶기도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다. 평소 알고 있던 영어 단어의 어원을 알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발견의 기쁨이었다.

5)     필자의 개입 : “필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이 잔인한…..(p272)” 모든 글을 통틀어 아마 딱 한군데 필자가 개입하는 부분이 있다. 본인이 쓰다가 본인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장면이었다. 3인칭 시점의 글쓰기에서 필자의 개입은 뜬금없기도 하지만, 왠지 갑작스레 등장한 필자가 반갑기도 하다. 색다른 재미를 주는 대목이었다.

6)     과학, 철학 등을 넘나드는 이야기 : 짧고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 원자, 정반합, 윤회, 등등 다양한 지식들이 숨겨져 있다. 오비디우스의 깊고 넓은 지식과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역시 이런 고전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7)     주석의 힘 : <변신 이야기>는 주석이 꽤 많다. 이야기의 이야기가 주석에 들어 있기도 하고, 단어들을 세심하게 번역하거나 알기 쉬운 표현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이것은 이야기를 이해하고 흐름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B.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

1)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심하게 얽힌 족보 : 수많은 등장인물과 한 인물에게 부여된 다양한 이름 덕분에 누가 누군지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배다른 형제자매는 또 얼마나 많은지. 신화라고 하지만 이건 뭐.. x족보가 따로 없다. 신들이 곧 옛날의 왕인 것 같다.

2)     너무 세밀한 묘사의 불편함 :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밀한 묘사 중 특히 성폭력적인 장면에서는 읽기가 너무 불편했다. 감정이입이 되어 당장이라도 이놈을 죽여버려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론 책을 그냥 덮어버리고 싶은 정도였다.

 

C.      내가 역자라면

이윤기 선생님이 고심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긴 하셨는데, 여전히 나 같은 애들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힘들어할 것 같다.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읽다 보면 어느 새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 듯. 이름을 다 통일해서 쓸 것 같다. 같은 인물 다양한 이름을 가진 것들을 전부 통일하기. 그래서 주석을 없애 버리기. ‘누구누구의 아들, 아버지, 이라면 관계 바로 옆에 괄호를 열고 이름을 써줄 것이다. 그러면 그 관계를 이해하기가 좀 쉬울까? 그리고 잔인한 묘사들은 적당히 잘라서 썼을 것 같다. 물론 글의 흐름상 꼭 필요하다면 쓰긴 해야겠지만, 너무 오버된다 싶으면 적절한 선에서 썼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 ‘오비디우스는 이 글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이 읽히는 이들에게 그의 이름 외에 무엇을 남기고 싶었을까?’ 이다. 분명히 시대의 상황과 그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썼을텐데 말이다. 각각의 이야기 혹은 몇 개의 이야기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줬으면 제목을 통해서 제시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렇게 하면 독자에게는 상상력이 제한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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